글쓰는 이와 글 못 쓰는 이
2024년 10월
나는 보통 기술에 대한 예측을 꺼리지만, 이것만큼은 꽤 확신한다: 수십 년 안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라면 알게 되는 가장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지이다.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컴퓨터 설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지 알고 있으며,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려면 명확하게 생각해야 하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많은 직업에 스며들어 있으며, 직업이 더 명망 있을수록 더 많은 글쓰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글쓰기에 대한 만연한 기대와 그것을 해내는 데 따르는 본질적인 어려움이라는 이 두 가지 강력한 상반된 힘은 엄청난 압력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저명한 교수들이 표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도용의 사소함이다. 그들이 훔치는 것은 대개 가장 평범한 상투적인 문구들인데, 이는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소질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노력 없이도 써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는 그들이 글쓰기에 조금도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이러한 상반된 힘이 만들어내는 압력을 해소할 편리한 배출구는 없었다. JFK처럼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대신 글을 쓰게 하거나, MLK처럼 표절할 수도 있었지만, 글을 사거나 훔칠 수 없다면 직접 써야 했다. 그 결과 글을 써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거의 모든 사람이 글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더 이상 그렇지 않다. AI가 이 세상을 활짝 열었다. 글쓰기에 대한 거의 모든 압력이 사라졌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AI가 대신 글을 써주게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글쓰는 이와 글 못 쓰는 이로 나뉜 세상이 될 것이다.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우리 중 일부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들과 전혀 못 쓰는 사람들 사이의 중간 지대는 사라질 것이다. 훌륭한 작가, 괜찮은 작가, 그리고 글을 못 쓰는 사람들 대신, 그저 훌륭한 작가와 글을 못 쓰는 사람들만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기술이 어떤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 때 그 기술이 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가? 대장장이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나쁜 일이다. 그 이유는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글쓰기는 생각하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종류의 생각이 있다. 이 점을 Leslie Lamport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저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글쓰는 이와 글 못 쓰는 이로 나뉜 세상은 들리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것은 생각하는 이와 생각 못 하는 이의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고 싶은지 알고 있으며, 당신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상황이 전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직업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강해지고 싶다면 운동을 한다. 그래서 여전히 강한 사람들이 있지만, 오직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전히 똑똑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오직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뿐일 것이다.
감사: 이 글의 초고를 읽어준 Jessica Livingston, Ben Miller, Robert Morris에게 감사드린다.